삼성 이건희 회장 추모
본문 바로가기

리뷰

삼성 이건희 회장 추모

삼성 이건희 회장 추모

초일류 시대 연 개척자 이건희 회장, 수원 선산에 잠들다(종합) | 연합뉴스

초일류 시대 연 개척자 이건희 회장, 수원 선산에 잠들다(종합), 서미숙기자, 경제뉴스 (송고시간 2020-10-28 10:48)

www.yna.co.kr

삼성 이건희 회장이 수원 선산에 잠들었습니다.

[사설] 이건희 추모 열기…정치가 폄하해도 국민은 존중한다

[사설] 이건희 추모 열기…정치가 폄하해도 국민은 존중한다, 오피니언

www.hankyung.com

기사내용 중 일부입니다.

 

서울대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는 이회장에 대해 "현대판 이순신" 이라고 칭하는 댓글이 달렸다.
이어 "(이회장의) 세계적 영향력은 세종대왕보다 낫다"며 "한글이나 금속활자
를 칭송해봤자 한국 안에서의 일인데, 세계 기술 발전에 영향을 미친 반도체 사업을
일으킨 것이야 말로 위인으로 칭송받을 일" 이라는 댓글이 올라왔다.

 

 

고 이건희회장님 어록 중

 

1.돌다리만 두드리지마라, 그 사이에 남들은 결승점에 가있다

2.요행의 유혹에 넘어가지마라, 요행은 불행의 안내자다

3.마음의 무게를 가볍게하라, 마음이 무거우면 세상이 무겁다

4.서두르지말라, 급히 먹는 밥은 체하기 마련이다

 

"부정은 암이고, 부정이 있으면 반드시 망한다.
도덕성이 결여된 기업에서는 좋은 물건이 나올 수 없고,
나와도 반갑지 않다"

 

 

 

 

 

[단독] "이건희, '일 한번 벌여보자'…고대·성대 합치려 했다"

[단독] "이건희, '일 한번 벌여보자'…고대·성대 합치려 했다",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 인터뷰 "이건희 회장은 스케일 남다른 분 '한국 넘어 세계 최고 사학 만들자' 강조" "우여곡절 끝에 결국엔

www.hankyung.com

25일 작고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생전 고려대와 성균관대 재단 합병을 추진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은 2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총장 재직 시절 이회장의 아이디어에 다라 2003년부터 고대와 성대 재단 합병 프로젝트를 2년간 준비했다" 고 밝혔다.
"한국에서 경쟁하는 대학이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의 사학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얘기했다.

 

'한국 넘어 세계 최고사학 만들자' 강조
"우여곡절 끝에 결국엔 무산"

 

 

 

이건희 회장의 여성채용확대에 대한 관점을 알수있는 일화입니다.

 

1994년에는 "성별을 불문하고 동일한 급여 테이블에 놓고 대우하라"고 지시했다. 이것은 학력, 성별에 따른 차별적인 채용을 없애겠다며 1995년 삼성이 내세운 "열린 채용"으로 이어졌다. 그 전까지 대졸 여사원의 월급은 고졸 여사원보다는 많았지만 남성보다는 적었다. 남성 사원보다 능률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일부 내부 인사들의 반발이 심했다. 더구나 급여를 올리느라 회사의 지출 규모도 늘었다. 그룹의 오너인 이회장의 리더십은 이때 더욱 빛났다. 삼성에서는 이회장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태스크포스 팀을 만들어 여성이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찾는 등 여성인력 활용 방안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채용된 여성 인력도 시간이 지나며 그룹 곳곳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이들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도 많이 허물어졌다. 기외호 고문은 "당시 사회 분위기나 재계 현실을 돌아 봤을때 여성인력 활용에 앞장선 것은 오너의 식견이나 결단 없이는 힘들었을 것" 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 이회장은 '인류의 반이 여자인데 대졸여성이 점점 많아지는 요즘 이들이 일하지 않는 것은 국력 낭비' 라며 '여성이 가진 섬세함과 따뜻함을 활용해야 한다'고 자주 강주하곤 했다"고 덧붙였다.

 

"고교때 귀티나던 이건희, 왜 하필 레슬링 지원했냐" 물었더니

[머니투데이 이정혁 기자]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강당에서 진행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영결식에서는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김 전 회

news.naver.com

이건희 회장이 학창시절 레슬링선수로 활약했다는 사실은 유명합니다.

기사 내용입니다.

 

이 질문에 이 회장은 "초등학교 시절 몇 년을 일본에서 살았다"고 밝히면서
"당시 일본은 물론 세계 프로레슬링 영웅이던 역도산의 경기를 많이 보고 존경했기 때문에 레슬링이 하고 싶어졌다"고 당차게 말했다고 한다